독립운동가. 원명은 정만(禎萬), 별명은 택기(澤基), 가명은 왕운기(王雲起). 평안북도 초산 출신. 병식(炳植)의 아들이다. 1919년 3, 1운동 때 할아버지 낙용(洛用)이 초산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하여 일본 헌병대를 습격하다가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순국하였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관보(官寶)는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2년 국내에 잠입한 독립군의 도움으로 가족과 함께 집안현 주선구(輯安縣朱仙溝)로 가서 아버지와 합류했다. 집안현 유수림자 서분수중구(楡樹林子西○水中溝)에 정착하여 천도교강습소에 입학하였다. 1923년 아버지가 대한독립단 집안총관소(輯安總管所)검찰원으로 있다가 투옥되고, 형인 정수도 최석순(崔碩淳) 부대에 입대하여 대일항쟁을 벌이다가 체포되자, 가족들을 길림성 몽강현(吉林省蒙江縣)으로 옮긴 다음 국민부(國民府)제2중대에 입대하여 군자금 모금과 일본군수비대 습격 등으로 활약하였다. 1934년 일본군수비대 밀정 정남해(鄭南海)를 제거하기 위하여 출동하였다가 주변의 밀고로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언도받고 복역하다가 광복과 더불어 출감하였다. 그뒤 반공투쟁을 전개하였으며, 6, 25사변 때 병을 얻어서 그해 7월에 죽었다.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