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안동 출신. 1919년 11월 만주로 망명하여 의열단에 가입하여 곧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의 명령으로 서울에 들어왔다. 1922년 2월 15일 의열단원 남영득(南寧得)이 거사를 목적으로 폭탄을 상해에서 서울로 운반하려는데 폭탄운반자금이 없어 이를 얻기 위하여 유병하(柳秉夏), 유시태(柳時泰) 등과 협의한 뒤 장탄된 권총 1자루를 가지고 서울 내자동 이인희(李麟熙)의 집으로 들어가 군자금 8천원을 요구하여 50원을 받아 임시정부에 보냈다. 다시 만주 안동에서 의열단원 김시현(金始顯), 황옥(黃鈺), 김지섭(金祉燮) 등과 같이 조선총독을 비롯하여 일본인 고관 암살과 중요 관공서 파괴를 목적으로 폭탄 30개, 권총 13정과 조선혁명선언격문 등을 서울로 반입하다가 동지들이 잡히자 김지섭과 함께 만주로 피신하여 계속 활동하였다. 1929년 안동에 있는 홍종우(洪鍾祐)의 집에서 단원 10여명과 독립의열 활동방안을 밀의하던 중 잡혀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언도받았으며, 평양복심법원에서는 징역 4년6월을 언도받은 뒤 4년1개월 동안을 복역하다가 출옥하였다. 1982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