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홍원식(洪元植)
  • 남양홍씨(南陽洪氏),  출생~사망 : 1877 ~ 1919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신.

한말 군인으로 1907년의 군대해산에 반대하여 일본군과 직접 대결하다가 부상하여, 고향인 제암리로 내려와 김성렬(金聖烈), 안종후(安鍾厚) 등과 구국동지회를 조직하여 활약하였다. 이 사실을 수사하기 위하여 파견된 일본헌병 2명을 살해하고 피신생활을 하던 중 3, 1운동을 맞았다. 4월 5일 발안 장날을 이용하여 안상용(安相容), 안진순(安珍淳) 등 1,0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일본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3명이 부상하였다. 이에 군중이 격노하여 투석으로 맞서 순사부장을 살해하였다. 이후 수원에서 많은 헌병과 경찰이 파견되어 대대적인 검거작업을 벌였는데, 이때 수원경찰서에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석방되었다. 그뒤 제암리 일대는 일본헌병과 경찰에 의한 삼엄한 경비 속에 있었는데, 4월 15일 오후 2시경 일본군 중위 아리타(有田俊夫)가 인솔한 군경이 제암리에 도착, 민간인에게 알릴 일이 있다고 속여 기독교인, 천도교인 30여명을 제암리 교회에 모이게 하였다. 잠시 뒤 농민들이 교회에 집합하자, 아리타는 출입문과 창문을 잠그게 하고 집중사격을 명하였다. 이때 교회 안에서 죽은 사람이 22명, 뜰에서 죽은 사람이 6명이었는데, 그도 아내와 함께 순국하였다.이 만행은 외국 선교사들의 분노를 샀는데, 특히 스코필드(Schofield, F. W.)는 현장사진을 찍어 미국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