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오광선(吳光鮮)
  • 해주오씨(海州吳氏),  출생~사망 : 1896 ~ 1967
독립운동가. 경기도 용인에서 오인수(吳寅洙)의 장남으로 태어나 본명은 오성묵(吳性黙)이다. 후일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몸을 던지면서 조선을 광복(光復)하겠다고 해서 오광선으로 개명하였다.

1918년 남만주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제1대대 중대장을 비롯하여 1920년 신흥무관학교 교관, 독립군 제1대대 제3중대장, 제1대대장, 서로군정서 별동대장을 지냈다. 서로군정서의 경비대장으로 독립군을 인솔하고 노령으로 이동하였다가 적군(赤軍)에 붙잡혀 6개월간 복역하던 중 시베리아형무소에서 탈출하였다.

1930년에 결성된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의용군 중대장으로 활약하다가, 1934년 김구(金九)가 중국군측과 교섭하여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 한국인훈련생 특별반을 설치하자, 지청천(池靑天), 이범석(李範奭) 등과 더불어 교관으로 독립군간부를 양성하였다.

1935년 동북항일한중연합군 독립대대장을 지냈다. 1940년 북경(北京)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혀 신의주형무소에 투옥되어 3년간 복역한 뒤 다시 만주로 건너갔다. 1945년 광복 후 귀국하여 광복군 국내지대장(國內支隊長)을 지냈고, 한국군 육군대령으로 임관되어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