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조시원(趙時元)
  • 함안조씨(咸安趙氏),  출생~사망 : 1904 ~ 1982
광복군. 본명은 용원(鏞元). 호는 호일(胡逸). 경기도 양주 출신. 1920년 2월 일본경찰에 수배되자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남방대학부속중학교(上海南方大學附屬中學校)를 거쳐 상해남방대학역사사회학과(上海南方大學歷史社會學科)에서 수학하는 한편, 1927년 김무정(金武亭), 윤호(尹浩), 조한용(趙漢用), 허열추(許烈秋) 등과 더불어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을 조직하여 정치문화부장 겸 선전조직부장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해 10월 중국본부한인청년총동맹(中國本部韓人靑年總同盟)을 결성하여 중앙위원장에 취임하여 중앙본부 및 각 지부간부를 총지휘하여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하였고, 1928년 한커우(漢口)에서 동방피압박민족연합회(東方被壓迫民族聯合會)창립에 참여하였다. 그뒤 만주로 가서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군총사령관 양세봉(梁世奉) 휘하에서 동만청년동맹(東滿靑年同盟)을 조직하여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하다가, 1929년 북경(北京)으로 가서 다물단(多勿團)에 가담하여 친일분자들에 대한 숙청을 전개하였다. 1930년 상해에서 화랑청년회(花郞靑年會)를 조직하였으며, 그해 겨울 월간잡지 '한보 韓報'의 편집위원을 거쳐 1931년 '한국문원 韓國文苑'을 발간하는 등 문화사업에 진력하다가 1933년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 가입하여 특파원으로 시안(西安)에 파견되어 한중군사협력을 협의하였고, 1935년 조소앙(趙素昻), 홍진(洪震) 등과 같이 월간잡지 '진광 震光'을 발간하였다. 1938년 한국독립당 중앙상임위원으로 선임되고, 비서부장, 조직부장, 선전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그해 10월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의원으로 피선되었다. 1940년 한국광복군 조직에 참여하여 총사령부 부관에 임명되었고, 1942년 총사령부 법무처장, 정훈처장 등을 역임하며, 일본제국주의와의 투쟁을 전개하던 중 광복을 맞아 1946년 귀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