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의 의병장. 호는 경암(敬庵). 충청북도 단양 출신. 장신(將臣) 문유(文裕)의 증손으로,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릴 때는 지친인 서광범(徐光範)의 도움을 받았으나, 그가 박영효(朴泳孝)와 친히 지냄을 보고 멀리하였다.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묄렌도르프(Mollendorf, P. G. von, 穆麟德)가 조정에 입사하게 되자 이를 통탄하고 김평묵(金平默)과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조정에서는 그의 학문을 인정하여 선전관을 제수하고, 장차 통정(通政)의 계급에 올려 세자의 사부로 초빙하고자 하였으나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다. 갑신정변 후 세상을 비관하더니 갑오경장의 충격으로 병석에 눕기까지 하였다. 그뒤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거의할 것을 결심, 이춘영(李春永), 안승우(安承禹) 등과 의병을 일으켜 제천으로 들어가 이필희(李弼熙) 의진의 참모가 되었다. 충주, 영월을 거쳐 안승우 의진과 회합하여 유인석(柳麟錫)을 만나 그를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그뒤 제천에서 안승우와 홍사구(洪思九)가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의진을 강화하려고 영춘, 정선을 거쳐 황해도, 평안도로 진출하여 모군하려 하였다가 도중에 적과 여러 차례 접전하였는데, 낭천(狼川)에서 교전중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일명 상열(相說), 자는 경은(敬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