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의 의병장. 자는 명숙(明淑). 호는 구연(龜淵). 충청남도 청양 출신.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박창로(朴昌魯), 안병찬(安炳瓚) 등과 홍주성(洪州城)에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약속하였으나 목사 이승우(李勝宇)의 배반으로 실패하였다. 의병거사에 실패한 뒤 곧바로 상경하여 10여 차례에 걸쳐 토적상소(討賊上疏)를 올렸다. 조정에서는 그의 기백에 감동하여 내부주사(內部主事)를 제수하였으나, 이를 고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다시 박안기(朴安○), 이만식(李○植)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1906년 4월 민종식(閔宗植)과 의병대를 조직하여 수천명으로 규합된 대의병진의 참모장으로 추대되어 홍주성을 점령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반격하는 일본군과 최후까지 접전하다가 아들 규대(奎大)와 함께 전사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