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승재(李承宰)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873 ~ 1910
한말의 의병. 자는 좌경(佐敬). 호는 창주(蒼洲). 경상북도 문경 출신. 창의대장(倡義大將) 강년(康○)의 맏아들이다. 1895년 12월 아버지를 따라 의병에 가담하여 서상업(徐相業) 등과 함께 아버지를 보좌하였다. 1907년 10월 김상한(金商翰)과 기타 100여명의 의병을 소모하여 김상한을 별진장으로 임명할 것을 아버지에게 상고하였다. 그해 11월 피화리전투에서 부상한 이도악(李道岳)을 이끌고 절벽을 기어올라가 무사히 적진을 벗어난 일도 있다. 1908년 5월 청풍성전투(淸風城戰鬪)에서 의진이 크게 패하고 아버지가 잡혔을 때, 경성으로 가서 옥문을 부수고 통곡하다가 옥에 갇힌 뒤 다음날 풀려나왔다. 그해 9월 19일 아버지가 순국하자 중군장 김상태(金尙台)와 같이 활약하다가 한양리(韓良履), 이기하(李起夏), 정희섭(丁喜燮), 허달(許達), 이응수(李應洙), 서상업 등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고 경성에 잠입하여 왜적 이토(伊藤博文)를 암살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잡혔으나 죄수들의 도움으로 탈옥하였다. 그뒤 국내에서 재거를 꾀하던 중 적정(敵偵)일진회원 박준호(朴準鎬)의 음독 유인으로 화를 입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전 박용규(朴龍奎)의 집에서 치료하였으나 피를 토하고 며칠 뒤에 숨졌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