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정시해(鄭時海)
  • 진양정씨(晋陽鄭氏),  출생~사망 : 1872 ~ 1906
한말의 의병.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 전라도 고창 출신. 아버지는 정종택(鄭鍾澤)이며, 어머니는 거창 신씨(居昌愼氏)이다.

기우만(奇宇萬)과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5년말 시묘(侍墓)를 마치고 하산하자, 을사조약으로 국권이 일본에 넘겨짐을 개탄하고 집을 떠나 최익현을 찾아갔다. 토적소(討賊疏)를 올리다 지친 최익현은 그를 격려하여 영남 지방의 지사규합을 명하고 의병봉기를 준비하도록 하였다. 경상도 일대를 누비며 선비들을 찾아 구국책을 모의하고 동지규합을 위하여 동분서주하며 실국광민(失國狂民)이라 자칭하고, 일광 이라 자호(自號)하였다. 1906년 봄 태인으로 최익현을 찾아가 영남의 민심동향과 지사들의 반응을 보고하고 거의모사(擧義謀事)에 참여하였다. 영남과 호남의 의병이 함께 봉기할 것을 통고하기 위하여 다시 영남으로 떠나 19일 만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최익현의 의거소식을 듣고 모여든 지사와 포수(砲手)는 날로 늘어나, 지방관아의 무기를 접수하고 군량을 확보하여 의병대의 병력은 800여명에 이르렀다. 6월 5일 최익현 의병대의 소모장 겸 중군장(召募將兼中軍將)으로 태인을 출발하여 6월 6일에는 순창 구암사(龜巖寺)로 진을 옮기고, 이튿날 순창성 밖에서 일본군 10여명을 사살하고 전열을 정비하여 6월 8일에는 곡성으로 진출하였다. 6월 19일 순창으로 회군하여 포진중, 6월 20일 일본군과 합세한 전주, 남원의 진위대(鎭衛隊)와 충돌하다가 전사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이,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