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문장가. 자는 자진(子眞). 고려 건국공신 규(規)의 6세손이며, 명종 때 공부상서(工部尙書)로 치사(致仕)한 유일(有一)의 아들이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문장이 뛰어나고 절행(節行)이 있었다. 또한, 순박하고 중후하여 정도(正道)로 책임을 삼으며 효경과 충신을 바탕으로 한 문사(文辭)가 탁월하였다. 최충(崔○)이 설립한 문헌공도(文憲公徒) 출신으로 급제 후 양양과 남방 어느 고을의 지방관이 되었고, 최충헌(崔忠獻) 집권시에는 사직(司直)이라는 한직에 머물렀던 것 같다. 한직에 만족하지 못하였으나, 무신정권이라는 한계 때문에 당시 이인로(李仁老), 오세재(吳世才), 임춘(林椿), 조통(趙通), 황보 항(皇甫抗), 이담지(李湛之) 등 명유(名儒)들과 교유하였으며, 진(晉)나라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본떠 강좌칠현(江左七賢)을 조직하여 시주(詩酒)로 많은 나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