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중기의 권신(權臣). 용궁김씨(龍宮金氏)의 시조. 시(詩)를 잘 하였다. 아버지는 태자소보(太子少保) 김정영(金正英)이고 할아버지 김설(金契)와 중조부 김낭정(金郎鼎)은 모두 태자소사(太子少師)의 벼슬을 지냈고 어머니는 승평군대군(昇平郡大君) 박씨 인데 태자첨사(太子詹事) 박경장(朴景章)의 딸이다. 홍씨(洪氏)에게 장가를 들어 1남1녀을 낳았으며. 다시 이씨 (李氏)와 결혼하여 1남 4녀을 두었다.
인종 때 태자시학(太子侍學)이 되고 과거에 급제하여 첨사부녹사(詹事府錄事)가 되었다. 1146년 의종이 즉위하자 태자시절의 은혜로 우정언(右正言)이 되었는데, 특히 왕의 총애를 받았다.
1150년 지주사(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이 죽으니, 왕이 명망있는 자를 얻어 대신하고자 하여 정함(鄭諴)의 추천으로 우승선에 임명되었고, 이로부터 금중(禁中)에 출입하여 권세가 대단하였다. 이어 형부낭중(刑部郞中) 기거주(起居注) 보문각동제거(寶文閣同提擧)가 되고, 1154년 좌승선으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 황보 탁(皇甫倬) 등을 급제시켰다. 1156년(의종 10) 태자소보(太子少保)가 되었으며, 친분이 있던 정함과 결탁하여 매관매작을 일삼아 부귀를 누렸다.
1156년 4월 20일(의종10)에 병으로 말미암아 46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뒤 경숙(敬肅)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수충내보동덕공신(輸忠內輔同德功臣) 이부상서(吏部尙書) 정당문학(政堂文學) 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에 추증되었다. 그의 묘지석이(墓地石)석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인종 때 태자시학(太子侍學)이 되고 과거에 급제하여 첨사부녹사(詹事府錄事)가 되었다. 1146년 의종이 즉위하자 태자시절의 은혜로 우정언(右正言)이 되었는데, 특히 왕의 총애를 받았다.
1150년 지주사(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이 죽으니, 왕이 명망있는 자를 얻어 대신하고자 하여 정함(鄭諴)의 추천으로 우승선에 임명되었고, 이로부터 금중(禁中)에 출입하여 권세가 대단하였다. 이어 형부낭중(刑部郞中) 기거주(起居注) 보문각동제거(寶文閣同提擧)가 되고, 1154년 좌승선으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 황보 탁(皇甫倬) 등을 급제시켰다. 1156년(의종 10) 태자소보(太子少保)가 되었으며, 친분이 있던 정함과 결탁하여 매관매작을 일삼아 부귀를 누렸다.
1156년 4월 20일(의종10)에 병으로 말미암아 46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뒤 경숙(敬肅)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수충내보동덕공신(輸忠內輔同德功臣) 이부상서(吏部尙書) 정당문학(政堂文學) 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에 추증되었다. 그의 묘지석이(墓地石)석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