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의 공신. 할아버지는 대호군 서(庶),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윤휘(允暉)이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서북면에 침입하고 경성(京城)을 점령하였을 때, 호군으로서 1362년 경성을 수복한 공으로 1363년 수복경성일등공신(收復京城一等功臣)에 서훈되었고, 1359년 홍건적 침입 때 전상호군(前上護軍)으로서 적을 격주(擊走)한 공으로 1363년 11월에 기해격주홍적이등공신(己亥擊走紅賊二等功臣)으로 서훈되었다. 1373년 강계만호(江界萬戶)로서 나하추(納哈出)가 보낸 종자 10여명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니, 공민왕이 이 소식을 듣고 소환하여 순위부(巡衛府)에 감금시켰다. 1376년(우왕 2) 왜구가 연산(連山: 지금의 論山) 지역을 침범하니, 최영(崔瑩), 최공철(崔公哲), 박수년(朴壽年) 등과 더불어 조전원수(助戰元帥)로서 홍산(鴻山)에서 싸워 적을 대패시켰다. 1377년 왜구가 강화에 침구하자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나세(羅世)와 조사민(趙思民), 이원계(李元桂) 등과 더불어 격퇴시켰으며, 이어 왜구가 영광, 장사(長沙), 해주, 평주(平州) 등에 침입하자 원수(元帥)로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적을 격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