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목왕 때의 문신. 안산안씨(安山安氏)의 시조이다. 조적(趙○)의 난 뒤 왕이 원나라에 불려가 조사를 받을 때 시종한공으로 1342년(충혜왕 복위3) 군부판서(軍簿判書)로서 이등공신이 되어 부모와 처는 삼등을 뛰어 봉작되고 아들 한 명에게는 8품이 주어졌으며 전(田) 70결, 노비 5구를 받았다. 뒤에 폐신(嬖臣) 강윤충(康允忠)과 가까이하여 정치도감관(整治都監官)이 되었으며, 1347년(충목왕3)에는 첨의참리(僉議參理)로서 태묘(太廟)에 제사하는 일을 주관하였는데 희생(犧牲)에 쓸 소를 자신이 다니는 절의 중에게 주고 태묘에 바치지 않았다. 백원석(白元石) 등 감찰(監察)들이 죄를 줄 것을 청하였으나 사위 이읍(李○)을 시켜 강윤충에게 뇌물을 주어 면하고 오히려 찬성사로 승진하였으므로 간관 송천봉(宋天鳳), 이방실(李方實), 안원룡(安元龍)이 사첩(謝牒)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해 6월 참리(參理)로서 사신이 되어 저포(苧布)를 바치러 원나라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