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유자우(庾自㥥)
  • 무송유씨(茂松庾氏),  출생~사망 : 1260 ~ 1313
고려 충렬왕, 충선왕 때의 관인. 초명은 서(瑞). 삼한공신 금필(黔弼)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승선(左承宣)을 지낸 해(垓)이다. 조충(趙○)의 손자로서 충렬왕 때 지밀직사사를 지낸 조변(趙○)의 딸과 혼인하여 3남 5녀를 두었다. 사위 가운데는 이승휴(李承休)의 아들인 임종(林宗)과 찬성사 정인경(鄭仁卿)의 아들인 신수(信綏) 등이 있다. 1276년(충렬왕 2) 서재장판관(西材場判官)으로 관직을 시작하여 1280년 권도평의녹사(權都評議錄事)가 되었다. 이후 9년 동안 7, 8품에 머물다가 1288년 장인인 조변이 병으로 면관(免官)하게 되자, 그를 위로하는 뜻에서 신호위보승낭장(神虎衛保勝郞將)에 초수(超授)되었으며, 다음해에는 감찰어사를 겸하였다. 1290년 인물추고구급염세별감사(人物推考救急鹽稅別監使)가 되어 충청도에 파견되었고, 다음해에는 서해도안렴사(西海道按廉使)에 임명되었다. 1297년 감찰시사(監察侍史)를 거쳐 동계교주도안렴사(東界交州道按廉使)가 되었는데, 이때 삼척현에 은거하고 있던 이승휴를 방문하여 충선왕의 명에 따라 초치하였다. 1301년 권신의 미움을 받아 강화군부사(江華郡副使)로 좌천되었다가 곧 군부좌랑(軍簿佐郞)에 올랐으며, 계속해서 예빈령(禮賓令), 삼사총랑(三司摠郞), 충주목부사(忠州牧副使), 삼사우윤 지통례문사(三司右尹知通禮門事) 등을 역임한 뒤, 1307년 판통례문사 선운별감사(判通禮門事選運別監使)가 되었다. 1308년(충선왕 즉위년)에는 검교첨의평리 행상주목사 겸 상락성산도전민계점사(檢校僉議評理行尙州牧使兼上落星山道田民計點使)에 제수되고, 다음해 다시 복주목사(福州牧使)로 옮겼다. 1310년에 다시 해주목사가 되었다가, 다음해 병을 얻어 면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