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추적(秋適)
  • 양지추씨(陽智秋氏)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양지추씨(陽智秋氏)의 시조. 호는 노당(露堂). 충렬왕 초 과거에 급제하여 안동서기(安東書記), 직사관(直史館)을 거쳐 좌사간(左司諫)에 올랐다. 1298년(충렬왕 24) 환관 황석량(黃石良)이 권세를 이용, 자신의 고향인 합덕부곡(合德部曲: 현재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을 현(縣)으로 승격시키려고 할 때, 그 서명을 거부하자 황석량의 참소로 순마소(巡馬所)에 투옥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시랑으로서 북계 용주(龍州)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충렬왕 말년 안향(安珦)에 의하여 발탁되어 이성(李晟), 최원충(崔元○) 등과 함께 7품 이하의 관리, 혹은 생원들에 대한 유학교육을 담당하였으며, 한문교양서인 '명심보감'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민부상서(民部尙書), 예문관제학에 이르러 치사(致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