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중기의 정치가. 자는 천은(天隱). 태조의 종제인 영해공(寧海公) 만세(萬歲)의 7대손이며, 상사봉어(尙舍奉御)로 추봉된 이민(里民)의 아들이다. 어려서 수령의 눈에 띄어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과거에 합격한 뒤 전례에 따라 양온승동정(良○丞同正)이 되었다. 1112년(예종 7) 진양사록 겸 장서기(晋陽司錄兼掌書記)가 되었으며, 제안부록(齊安府錄), 대원부전첨(大原府典籤), 국자박사(國子博士)를 거쳐 진양통판(晋陽通判)으로 있으면서 해적을 물리치는 데 공훈을 세워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가 되었다. 그뒤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비서승(○書丞), 공부낭중(工部郞中), 비서소감(○書少監), 병부시랑(兵部侍郞), 추밀원좌승선(樞密院左承宣), 이부시랑(吏部侍郞), 지주사(知奏事),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142년(인종 20) 지공거로 임명되어 과거시험을 주관하였고, 곧 이부상서가 되었다. 1144년 추밀원사 판삼사사(樞密院使判三司事)로 있었는데, 양부(兩府)에서 청렴한 관리를 추천하라는 왕명이 내려오자, 함유일(咸有一)을 천거하여 내시(內侍)에 소속되게 하였다. 뒤에 함유일은 공부상서 에까지 승진하였다. 이듬해에 수사도 참지정사(守司徒參知政事),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1146년(의종 즉위년)에 평장사(平章事)가 된 뒤 궤장(○杖)을 하사받았으며, 1149년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다. 시호는 강렬(剛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