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중기의 관인. 수사공 참지정사(守司空 參知政事)를 지낸 궤(軌)의 아버지이다. 1056년(문종 10) 왕이 지방수령과 향리들의 부지런함과 태만함, 청렴결백함과 부정, 부패 따위의 근무자세와 일반백성들의 빈부와 고락을 살피기 위하여 사신을 보내어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때 겸시어사 형부원외랑(兼侍御史 刑部員外郞)으로서 산동남충경상주 삼도무문사(山東南忠慶尙州 三道撫問使)에 임명되었다. 1059년 기거주(起居注)로 있으면서 감찰어사 이병양(李秉陽)과 함께 죄수를 조사, 그 중 죄가 가벼운 63명을 석방시켰다. 1061년 우유덕(右諭德)이 되었고, 1063년 형부시랑 우간의대부(刑部侍郞 右諫議大夫)로서 서북면춘하번병마부사(西北面春夏番兵馬副使)로 나아갔다. 뒤에 관직이 예부시랑 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