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의 유학자, 문신. 자는 지중(止中). 호는 제정(霽亭). 첨의참리(僉議參理) 천의 아들이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제주(成均館祭酒)를 거쳐서 공민왕 때 전리판서(典理判書),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하였다. 1359년(공민왕 8) 호부상서로 동북면병마사가 되었다. 호부상서로 있던 1360년 팔관회 때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면되었으나, 훌륭한 학자였으므로 1366년에 밀직제학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신돈이 전횡하던 때에 그에게 주색을 일삼는다고 공석에서 직언한 것이 화근이 되어 다시 파면되었다. 신돈이 주살(誅殺)된 뒤에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고, 1385년(우왕11)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저서로는 '제정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