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의 제9비. 평주(平州:지금의 평산) 사람이며 삼중대광(三重大匡) 유금필(庾黔弼)의 딸이다.
유금필은 태조를 도와 여러 차례 전장에서 활약하였고 후삼국의 통일전에도 참가하는 등 많은 활약상을 보였던 대표적 휘하 무장이었다. 동양원부인은 효목태자(孝穆太子) 의(義)와 효은태자(孝隱太子)를 두었다. 효은태자는 동양군(東陽君) 이라고도 불렸는데, 광종 재위연간에 군소배와 사귀면서 반란을 꾀하였다 하여 광종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두 아들 임(琳)과 정(禎)은 나이가 어려 죽음을 면하고 도망하여 목숨을 부지하다가 목종이 폐위되고 현종이 즉위하는 정변을 거친 뒤 복권되어 다시 종적(宗籍)에 부적되었다. 광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도를 시행하고 이에 반발하는 많은 호족세력을 숙청하였는데, 숙청된 인물들 가운데 평주 출신 인물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평주를 외가로 하는 동양군 과이 지역 호족들이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왕자와 호족이 같은 사건에 연루되어 다 함께 숙청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태조는 평주 지역 출신 호족들의 딸들을 후비로 맞아들였는데, 동양원부인도 그 가운데 한사람이다.
유금필은 태조를 도와 여러 차례 전장에서 활약하였고 후삼국의 통일전에도 참가하는 등 많은 활약상을 보였던 대표적 휘하 무장이었다. 동양원부인은 효목태자(孝穆太子) 의(義)와 효은태자(孝隱太子)를 두었다. 효은태자는 동양군(東陽君) 이라고도 불렸는데, 광종 재위연간에 군소배와 사귀면서 반란을 꾀하였다 하여 광종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두 아들 임(琳)과 정(禎)은 나이가 어려 죽음을 면하고 도망하여 목숨을 부지하다가 목종이 폐위되고 현종이 즉위하는 정변을 거친 뒤 복권되어 다시 종적(宗籍)에 부적되었다. 광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도를 시행하고 이에 반발하는 많은 호족세력을 숙청하였는데, 숙청된 인물들 가운데 평주 출신 인물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평주를 외가로 하는 동양군 과이 지역 호족들이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왕자와 호족이 같은 사건에 연루되어 다 함께 숙청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태조는 평주 지역 출신 호족들의 딸들을 후비로 맞아들였는데, 동양원부인도 그 가운데 한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