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선왕의 제6비. 공암(孔巖: 지금은 양천)허씨로 첨의중찬(僉議中贊) 허공(許珙)의 딸이다.
허공 에게는 전처 윤씨(尹氏)와의 사이에 3남 2녀, 후처 최씨(崔氏)와의 사이에 2남 2녀가 있었는데 순비는 후처 최씨의 소생이다. 처음에 종실 평양공(平陽公) 왕현(王眩 : 원종의 생질)에게 출가하여 모두 3남 4녀를 출산하였고, 남편과 사별한 뒤 1308년(충렬왕 34) 다시 충선왕에게 재가하였으며, 충선왕이 복위한 뒤 순비로 봉함을 받았다. 그뒤 충선왕이 충렬왕 비였던 숙비(淑妃)를 총애하게 되자 숙비와 불화하였고, 충선왕 과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전 남편 소생 딸 가운데 1명이 원나라에 출가하여 백안홀독황후(伯顔忽篤皇后)가 되었으며, 또 1명은 원나라의 좌승상 길길반의(吉吉反懿)의 처가 되고, 또 1명은 경양군(慶陽君) 노책(盧吸)에게 출가하여 그 손녀가 공양왕 비 순비가 되었다.
허공 에게는 전처 윤씨(尹氏)와의 사이에 3남 2녀, 후처 최씨(崔氏)와의 사이에 2남 2녀가 있었는데 순비는 후처 최씨의 소생이다. 처음에 종실 평양공(平陽公) 왕현(王眩 : 원종의 생질)에게 출가하여 모두 3남 4녀를 출산하였고, 남편과 사별한 뒤 1308년(충렬왕 34) 다시 충선왕에게 재가하였으며, 충선왕이 복위한 뒤 순비로 봉함을 받았다. 그뒤 충선왕이 충렬왕 비였던 숙비(淑妃)를 총애하게 되자 숙비와 불화하였고, 충선왕 과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전 남편 소생 딸 가운데 1명이 원나라에 출가하여 백안홀독황후(伯顔忽篤皇后)가 되었으며, 또 1명은 원나라의 좌승상 길길반의(吉吉反懿)의 처가 되고, 또 1명은 경양군(慶陽君) 노책(盧吸)에게 출가하여 그 손녀가 공양왕 비 순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