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정비(靜妃)
  • 개성왕씨(開城王氏),  출생~사망 : ? ~ 1345
고려 충선왕의 제3비. 고려 제20대왕 신종의 증손 서원후(西原侯) 왕영(王瑛)의 딸이다. 서원후의 누이 1명은 충렬왕에게 출가하여 정신부주(貞信府主)가 되었고, 서원후의 딸은 충렬왕의 아들인 충선왕과 혼인하여 고려왕실 족내혼이 원 간섭기까지 계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충선왕과 정비 와의 혼인은 충선왕의 개인의사가 크게 반영된 것이었다. 충렬왕비이며 충선왕의 모후인 제국대장공주가 원나라에 다녀오기 위하여 공녀를 차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서원후의 딸 정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자가 모후와 함께 원나라로 가는 도중에 온천에서 유숙하는데 세자의 안색이 좋지 못하므로 그 연고를 물으니, '내가 장차 서원후의 딸에게 장가들려 하였는데 지금 뽑힌 공녀에 들어 있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하므로,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주가 곧 서원후의 딸을 되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2년 뒤인 1289년(충렬왕 15) 15세의 나이로 충선왕은 정비를 세자비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원나라의 간섭기이므로 원나라의 공주가 아니면 왕의 제1비가 될 수 없었으므로, 정비는 충선왕과 제일 먼저 혼인하고도 원나라 공주출신 왕비들에 이어 제3비로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성 근친혼은 원나라 세조의 비난으로 연결되어 충선왕은 복위교서에서 동성금혼령을 선포하고, 대신 왕실과 통혼할 수 있는 15개 가문의 재상지종(宰相之宗)을 선정하였다. 시호는 정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