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신종의 7대손. 학성부원군 향(鶴城府院君珦)의 아들이다. 이름은 화(和). 공양왕 즉위 후 남평군에 봉해졌으나, 1392년 이성계(李成桂) 일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이를 제거하려던 윤이(尹彛), 이초(李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전판삼사사(前判三司事) 우현보(禹玄寶) 및 수연군(壽延君) 규(珪), 영원군(寧原君) 기(琦) 등의 종실과 함께 멀리 유배되었다. 그뒤 1394년에 유배지를 옮기던 중 밀성(密城: 지금의 密陽)의 장님 이흥무(李興茂)에게 고려왕실의 복구와 이성계의 운명을 점치게 하였다는 사실이 역모로 알려져 고문을 받고 안동옥(安東獄)에 투옥되었다. 그때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박위(朴○) 역시 이흥무에게 남평군과 같은 내용을 점치게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결국 죄가 더욱 확대되어 수원부(水原府)에서 문초를 받은 뒤 동생 영평군(鈴平君) 거, 이흥무 등과 함께 대역죄로 사형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