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오(李䫨)
  • 인천이씨(仁川李氏),  출생~사망 : 1042 ~ 1110
고려의 문신. 호는 금강거사(金剛居士). 한(翰)의 손자이며, 자상(子祥)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된 뒤 문종, 순종, 선종, 헌종, 숙종, 예종 등 여섯 왕을 모셨다. 1097년(숙종 2) 예빈경추밀원부사(禮賓卿樞密院副使)가 되었고, 다음해에 예부상서가 되었다. 1100년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 지공거가 되어 진사를 뽑고 복시를 주관하였다. 1101년 장단 총지사(摠持寺)에서 대각국사(大覺國師: 義天)가 죽자, 정당문학으로서 대각국사의 재주와 행실이 뛰어나고 명망이 높으므로 예를 어겨서라도 복(服)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왕이 소복과 현관(玄冠)을 쓰고 장례를 지내게 하였다. 1103년 검교사도 수사공 판형부사(檢校司徒守司空判刑部事)가 되고, 다음해 수사공 상서우복야 중서시랑평장사 판삼사사 태자소보(守司空尙書右僕射中書侍郞平章事判三司事太子少保)가 되었다. 예종이 즉위하여 문하시랑동평장사(門下侍郞同平章事)에 제수되었고, 다음해 상주국(上柱國), 1107년(예종 2) 문덕전태학사 판상서예부사 수국사(文德殿太學士判尙書禮部事修國史)가 되었으며, 1109년 다시 지공거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였다. 1110년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사 수태보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상서예부 한림원사 수국사상주국(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守太保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判尙書禮部翰林院事修國史上柱國)에 이르렀다. 학문에 뛰어나고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금강경'을 좋아하여 스스로 금강거사 라는 호를 지어 불렀다. 시호는 문량(文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