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문신. 초명은 수(壽). 자는 원로(元老). 예(預)의 아들이며, 재상을 지낸 최유선(崔惟善)의 외손자이다. 예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고, 이어 좌습유(左拾遺)를 거쳐 서경유수판관이 되었다. 예종이 서경에 임하였을 때 백성을 잘 다스렸다 하여 칭찬을 받았고, 환도할 때 호종할 것을 명받았으나 사양하였다. 그뒤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을 거쳐 병부시랑이 되어 군사를 선발하는 데 14년 동안 조금도 잘못이 없었다. 여러 관직을 거친 뒤 공부상서가 되었다. 인종이 즉위하면서 검교사도 수사공 참지정사(檢校司徒守司空參知政事)로 발탁된 뒤 중서시랑평장사가 되었다. 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난이 진압된 뒤에 판이부사 감수국사(判吏部事監修國史)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문하시중으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왕좌재(王佐材) 등 33인을 뽑았다. 1130년에는 양부(兩府)의 대신들과 의논하여 관리들에게 쌀을 차등 있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이자겸의 난 때 세운 공으로 추충위사동덕공신(推忠衛社同德功臣)의 호를 받았으며, 개부의동삼사 문하시중 상주국(開府儀同三司門下侍中上柱國)으로 치사(致仕)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