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문신. 중찬(中贊)으로 치사(致仕)한 송례(松禮)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추성보리찬화안사공신(推誠輔理贊化安社功臣) 도첨의사사중찬낙랑부원군(都僉議使司中贊樂浪府院君) 분이며, 어머니는 중화김씨(中和金氏)로 호부상서를 지낸 김기석(金祇錫)의 딸이다. 부인은 안주강씨(安州康氏)로 원종 이후 권문(權門)을 이룬 세가출신이다. 1300년(충렬왕 26) 앞서 부임한 원의 다루가치(達魯花赤) 활리길사(闊里吉思)는 뇌물수수와 작폐가 극심하였다. 그때 첨의중찬(僉議中贊) 이었던 송빈과 사감을 가진 전판밀직사사(前判密直司事) 유비(柳庇)의 모함으로 아버지 빈과 형제인 우부승지 인(璘), 낭장 유, 조카 우부승지 방영(邦英), 장군 신단(臣旦) 등이 순마소(巡馬所)에 하옥되고 그 일가가 곤욕을 당하기도 하였다. 충정왕이 폐위당하고 공민왕이 즉위하자 구신훈로(舊臣勳老)로서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임용, 수상으로 영입되었다. 이때에는 기철(奇轍) 일가의 득세기로 이를 견제하기 위한 시종공신(侍從功臣) 조일신(趙日新) 계의 세력, 왕이 부임하기 전 섭정권단(攝政權斷) 정동성사(征東省事)로 대행권을 장악한 이제현(李齊賢) 계의 3파세력이 각축전을 벌이게 되었다. 1352년(공민왕 1) 3월에서 10월에 걸쳐 조일신이 기선을 제압, 기철 일가를 숙청하고 이제현을 견제, 은퇴시키고 9월에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실권을 장악하더니, 10월 1일에는 반란을 획책하여 추종세력이었던 좌정승 정천기(鄭天起), 찬성사 최화상(崔和尙), 판삼사사 이권(李權), 판밀직 나영(羅英)을 숙청, 도당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인사를 천단하니 송서를 우정승 으로, 자기는 좌정승 판군부감찰사(判軍簿監察事)가 되었다. 조일신이 패한 뒤 다음해 2월에 여량부원군으로 죽었다. 아들에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를 지낸 인번(仁番), 윤번(允番), 의번(義番)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