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문신. 자는 복시(復時). 시중 사위(士威)의 증손으로 호부시랑 최유서(崔惟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중추원사 김원황(金元晃)의 딸이다.
처음 성균시에 실패하였으나 훈(勳: 順宗)의 태자부(太子府)에 입시한 뒤 줄곧 근직(近職)에 있으면서 명의태후 와의 인척관계로 숙종, 예종의 총애를 받았다. 1103년(숙종 8) 사신으로 요(遼)나라에 다녀왔으며, 1109년(예종 4) 어사대부(御史大夫)로서 간의(諫議) 이재(李載), 김연(金緣)과 함께 여진족에 대한 윤관(尹瓘), 오연총(吳延寵), 임언(林彦)의 패사죄(敗事罪)를 다스리도록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111년 호부상서 겸 삼사사(戶部尙書兼三司使)를 거쳐 이듬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검교사공추밀원사(檢校司空樞密院使)를 역임하였다. 1113년 수사공 병부상서 참지정사(守司空兵部尙書參知政事)가 되고 곧 상서좌복야 판삼사사 주국(尙書左僕射判三司事柱國)에 올라 치사하였다. 시호는 화순(和順)이다.
처음 성균시에 실패하였으나 훈(勳: 順宗)의 태자부(太子府)에 입시한 뒤 줄곧 근직(近職)에 있으면서 명의태후 와의 인척관계로 숙종, 예종의 총애를 받았다. 1103년(숙종 8) 사신으로 요(遼)나라에 다녀왔으며, 1109년(예종 4) 어사대부(御史大夫)로서 간의(諫議) 이재(李載), 김연(金緣)과 함께 여진족에 대한 윤관(尹瓘), 오연총(吳延寵), 임언(林彦)의 패사죄(敗事罪)를 다스리도록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111년 호부상서 겸 삼사사(戶部尙書兼三司使)를 거쳐 이듬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검교사공추밀원사(檢校司空樞密院使)를 역임하였다. 1113년 수사공 병부상서 참지정사(守司空兵部尙書參知政事)가 되고 곧 상서좌복야 판삼사사 주국(尙書左僕射判三司事柱國)에 올라 치사하였다. 시호는 화순(和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