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궤(李軌)
  • 청주이씨(淸州李氏),  출생~사망 : ? ~ 1122
고려의 문신. 예부시랑(禮部侍郞) 유적(攸績)의 아들이다. 선종 때 소부주부(少府注簿)로서 왕의 명을 받아 송나라에 보내는 표문(表文)을 교정하면서 잘못하여 요나라의 연호 대안(大安)을 사용하여 그 표문이 송나라에서 되돌아오자 이에 연좌되어 파면되었다. 1101년(숙종 6) 예부낭중(禮部郞中)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그때 일행 중 공목관(孔目官) 이복(李復)이 의천(義天)의 청으로 금종(金鐘)을 요나라에 바친 일이 문제가 되어 귀국 후 형부(刑部)의 탄핵을 받아 그것을 막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파면을 당하였다. 1117년(예종 12) 추밀원사(樞密院使)가 되었다가 뒤이어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었고, 다시 정당문학 판한림원사 겸 태자소부(政堂文學判翰林院事兼太子少傅)가 되었다. 이듬해 호부상서판예부사(戶部尙書判禮部事)가 되었고, 1119년 수국사(修國史)가 되었으며, 뒤이어 수사공 참지정사(守司空參知政事)로 치사(致仕)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초명은 재(載), 자는 공제(公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