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염국보(廉國寶)
  • 파주염씨(坡州廉氏),  출생~사망 : ? ~ 1388
고려의 문신. 아버지는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제신(悌臣)이다. 서성군(瑞城君) 흥방(興邦), 정수(廷秀)는 아우로서 형제가 모두 급제하였다. 그는 이제현(李齊賢) ― 안보(安輔)로 이어지는 좌주문생(座主門生)관계였다. 학문적 경향은 성리학을 수용하였던 것으로 보여지며 안렴사로 지방에 파견되어 폐단을 다스림으로써 개혁에 참여하였다. 서성군(瑞城君)에 봉하여졌으며 1385년(우왕 11) 4월에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동지공거(同知貢擧) 인 정당문학(政堂文學)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진사를 뽑고 우홍명(禹洪命) 등 33인에게 급제를 내렸다. 덕창부행수(德昌府行首) 문윤경(文允慶)은 본디 환관(宦官) 이광(李匡)의 종자로 그 친구의 책문을 훔쳐 썼으므로 정몽주가 이를 내쫓았는데 염국보가 이를 취하였으므로, 최영(崔瑩)이 사람들에게 농담으로 말하기를 '전달에 감시학사(監試學士) 윤취(尹就)는 빈한한 선비를 버리고 어리석은 아이를 취하였으므로 하늘이 큰 우박을 내려 내 삼〔麻〕을 다 망쳤는데 이번에 동당학사(東堂學士)는 또 어떠한 천변을 가져오려는가. '라고 하였다. 1388년 1월 최영,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아우 흥방 및 임견미(林堅味) 등이 제거될 때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