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조변(趙抃)
  • 횡성조씨(橫城趙氏),  출생~사망 : ? ~ 1288
고려의 문신. 문하시중 충의 손자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계순(季珣)의 아들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장인인 김방경(金方慶)의 세력에 힘입어 원종 때 낭장 겸 감찰사에 임명되었다. 일찍이 행수(行首)로서 입직(入直)할 때 밤이 늦어 대궐문이 닫혀 못 들어가자 원종이 문틈으로 들어오라고 명하였으나 이는 도리가 아니라고 거절하여 그 곧음이 당시 사람들에게 알려져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궐직문제(闕直問題)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271년(원종 12) 김방경이 진도의 삼별초를 토벌할 때 장군으로 기용되고, 1274년 여원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대장군으로 천호(千戶)가 되어 김방경을 따라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1281년(충렬왕 7) 제2차일본정벌 때 원제(元帝) 로부터 소신교위관군총파(昭信校尉管軍摠把)에 임명되고, 1284년 대장군으로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와 우부승지를 거쳐 1287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이르렀다. 그뒤 병으로 면직이 되자 왕은 그의 사위 유서(庾瑞)를 낭장으로 임명하여 위로하기도 하였다. 용모가 빼어나고 전고(典故)에 정통하였으며, 성품이 관후하여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