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최우청(崔遇淸)
  • 충주최씨(忠州崔氏),  출생~사망 : ? ~ 1184
고려의 문신. 문하시랑(門下侍郞) 옥(沃)의 아들이다. 충주의 주리(州吏)로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진례현위(進禮縣尉)가 되었다. 명종의 잠저(潛邸)때 익양부(翼陽府) 전첨(典籤)을 역임하고, 명종이 즉위하자 구료(舊僚)로 총임(寵任)되어 대간직(臺諫職)에 있었다. 1174년(명종 4) 병마부사(兵馬副使)로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국자좨주(國子祭酒)를 거쳐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발탁되어 1177년 고시관(考試官)을 맡아 시부(詩賦)로 박돈장(朴敦章) 등과 10운시(十韻詩)로 김각장(金角章) 등을 시취(試取)하였다. 이해 서북면병마사로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킨 정주도령(靜州都領) 순부(純夫)와 낭장 김숭(金崇)을 참살한 공으로 판위위사(判尉衛事)에 승진되었다. 1180년 추밀원사 태자빈객(樞密院使太子賓客)을 거쳐 이듬해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가 되었다. 72세에 퇴관을 요청하였으나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를 가하여 치사(致仕)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