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자연(李子淵)
  • 인천이씨(仁川李氏),  출생~사망 : 1003 ~ 1061
고려의 문관. 자는 약충(若○). 소성백(邵城伯) 허겸(許謙)의 손자로,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한(翰)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낙랑군대부인(樂浪郡大夫人) 최씨(崔氏)이다. 처는 김씨(金氏)로 그 사이에 11남매를 두어 권문세가를 이루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당시의 권세가였던 김은부(金殷傅)의 처조카로서 정치적 함수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1024년(현종 15) 3월 유징필(劉徵弼)이 지공거가 되어 주관한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여, 1031년(덕종 즉위년) 우보궐(右補闕)이 되었다. 그뒤 이부낭중(吏部郞中), 어사잡단(御史雜端), 우승선을 거쳐 정종(靖宗) 때에는 급사중(給事中), 지중추원사, 중추부사 등을 지내다가, 1047년(문종 1)에 이부상서 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가 되고, 1049년에 수사도(守司徒), 1050년에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가 되었다. 1052년에는 그의 딸 셋이 문종에게 시집을 가서 인예태후(仁睿太后), 인경현비(仁敬賢妃), 인절현비(仁節賢妃)가 되었다. 특히, 인예태후는 순종, 선종, 숙종을 낳았으며, 인종에 이르기까지 왕들은 모두 인예태후의 혈통이 된다. 이렇게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자 사원세력을 장악하는 데에도 신경을 써서 그의 아들 소현(韶顯)은 금산사(金山寺)의 혜덕왕사(慧德王師)가 되었고, 손자인 승통(僧統) 세량(世良)은 현화사(玄化寺)에, 증손자인 의장(義莊)은 현화사에 있으면서 법상종(法相宗)의 세력을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경원이씨가 고려의 최고문벌로 성장하게 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1052년 수태위(守太尉)가 되었고, 이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태보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서(太保門下侍中判尙書吏部書)에 이르렀다. 그뒤 추성좌세보사공신(推誠佐世保社功臣)에 봉하여지고, 개부의동삼사 수태사 겸 중서령 감수국사 상주국 경원군 개국공(開府儀同三司守太師兼中書令監修國史上柱國慶源郡開國公)이 되었으며 식읍 3, 000호가 주어졌다. 문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장화(章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