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최문본(崔文本)
  • 동주최씨(東州崔氏),  출생~사망 : 1233 ~ 1276
고려의 문관. 수태부 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郞平章事) 온(溫)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산정도감판관(○定都監判官)이 되고, 견룡행수(牽龍行首)에 임명되었다. 1258년(고종 45) 김준(金俊) 등이 권신 최의(崔○)를 제거할 때 그 계획을 최의에게 누설하여 처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아버지 온이 김준과 함께 거사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면하고 섬으로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 친종장군(親從將軍)을 역임하였고, 1271년(원종 12) 관노(官奴)인 숭겸(崇謙)과 공덕(功德) 등이 무리를 모아 다루가치(達魯花赤)와 국내의 관직에 있는 원나라 사람들을 죽이고 진도(珍島)로 도망가려고 하자 이들을 잡아 국문하였다.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승선이 되어 응방(鷹坊)의 횡포를 간하였으며, 1276년 밀직부사 판도판서(密直副使版圖判書)에 올랐으나, 이해에 죽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대신의 체모가 있었으므로 몽고의 사신이 '너의 나라에 이같은 자가 몇 사람이나 있느냐○'라고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