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문신. 한미한 집안출신으로 협기가 있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여, 항상 변방에서 무공을 세워 출세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마침 예종 때 여진정벌에 종군, 공을 세웠으므로 화주(和州), 수주(水州) 두 고을을 지키게 되었다. 본래 이무(吏務)를 익히지 않았으나, 문부(文簿)에 개의치 않고 대체만을 들어 시행하였어도 크게 착오가 없었다. 1135년 묘청(妙淸)의 난 때는 추밀원승선(樞密院承宣)으로서 김부식(金富軾)의 지시를 받아, 정지상(鄭知常), 김안(金安), 백수한(白壽翰)을 죽였고, 이듬해에는 도병마사로서 김부식을 좇아 난을 평정하였다. 1138년에는 추밀원부사가 되고, 1140년 병부상서, 1141년 지추밀원사, 1142년 수사공(守司空)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판형부사(判刑部事)에 올랐다. 이듬해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거쳐, 1144년에는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서경유수사(西京留守使) 겸 태자소부(太子少傅)가 되었으나, 이듬해에 추충정난공신(推忠定難功臣)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수태위(守太尉) 문하시랑(門下侍郞)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상주국(上柱國)이 되었다. 시호는 충양(忠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