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의 문신. 호는 송와(松窩). 나주(羅州) 출생으로 양절공(良節公) 나익희(羅益禧)의 손자이고, 판밀직사부사(判密直司副使) 월포(月浦) 나영걸(羅英傑)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원주원씨(原州元氏)로 원충(元忠)의 딸이며, 부인 합천이씨(陜川李氏)는 판서(判書) 이음(李蔭)의 딸이다. 1340년(충혜왕 1) 문과에 급제하여 ' 문규(文奎) '라 이름을 고치고, 1343년(충혜왕 4)에 명경박사(明經博士)를 거쳐 1346년(충목왕 2) 개성참군(開城參軍) 으로, 1350년(충정왕 2) 낭장(郞將) 으로, 이듬해에는 겸통례문지후(兼通禮門祗侯)로 임명되었다. 1352년(공민왕 1)에는 서해도안렴사(西海道按廉使)를 역임하였다가 1354년(공민왕 3) 진도현령(珍島縣令)에 제수되었다. 그가 죽자 공민왕은 관리를 보내 치제(致祭)하도록 하였고 나주(羅州) 거평면(居平面) 탄방(炭坊) 천마봉(天馬峰) 아래에 장사지냈다. 1390년(공양왕 2) 나주시 문평면(文平面) 오룡리(五龍里)에 건립한 봉강사(鳳岡祠)는 1812년(순조 12) 경에 죽헌(竹軒) 나계종(羅繼從)과 나문규를 춘추로 배향하기 위해 금성나씨(錦城羅氏) 문중에서 건립한 사당이다(문화재자료 제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