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문(金問)
  • 광산김씨(光山金氏),  출생~사망 : 1373 ~ 1393
고려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중대광(重大匡) 광성군(光城君)에 봉해진 김정(金鼎)이고,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김약채(金若采)로 예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어머니 정부인(貞夫人) 원주원씨(原州元氏)는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원송수(元松壽)의 딸이다. 20세에 을과(乙科)에 3등으로 합격하여 예문관검열(藝文官檢閱)에 보임(補任)되었는데, 1393년(태조 2)에 병을 얻어 21세의 나이로 죽었다. 후에 손자 의정공(議政公) 김국광(金國光)이 높은 벼슬에 올라 좌찬성(左贊成)에 증직(贈職)되었다. 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는 대사헌(大司憲) 허응(許應)의 딸이자, 문경공(文敬公) 허공(許珙)의 현손녀(玄孫女)이다. 17세에 남편을 잃고 아들 김철산(金鐵山)을 키우며 평생을 수절하였다. 1455년(세조 1) 향년 79세로 죽자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세워주었다. 김철산은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고, 영의정(領議政)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에 증직되었다. 4남을 두었는데 광산부원군 김국광은 좌의정 을, 광성군(光城君) 김겸광(金謙光)은 우참찬(右參贊) 을, 김정광(金廷光)은 첨정(僉正) 을, 김경광(金景光)은 판교(判校)를 지냈다. 2녀는 재전부정(梓田副正) 이효온(李孝溫), 생원(生員) 권술(權述)에게 시집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