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조간(趙簡)
  • 김제조씨(金堤趙氏)
고려 후기의 문신. 1279년(충렬왕 5)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서적점녹사(書籍店錄事)에 보임되었고, 이듬해 왕이 문신들에게 시부(詩賦)를 시험할 때 또 수석을 차지하였으므로 황패(黃牌)를 받고 내시(內侍)에 소속되었다. 1288년에 국학직강(國學直講)으로 왕명에 의하여 새로운 악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벼슬이 점차 올라 보궐(補闕)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하자, 왕이 이를 가상하게 여겨 기거주(起居注)로 특진시켰고, 다시 첨의사인(僉議舍人)으로서 경상안렴사(慶尙按廉使)에 보임되었다. 1298년에는 좌사의(左司議)로 과거를 주관한 바 있고, 1300년 좌부승지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 부고시관)가 되어 진사를 뽑았다. 그뒤 좌간의, 좌승지를 거쳐 우상시권수밀직부사(右常侍權授密直副使)에 올랐다. 충선왕 때 형조시랑우간의대부(刑曹侍郞右諫議大夫)를 거쳐 밀직부사가 되었으며, 충숙왕 때 검교첨의평리(檢校僉議評理)를 역임한 뒤 찬성사에 올라 죽었다. 시문에 뛰어나 조선 영조 때 유광익(柳光翼)의 '풍암집화 風巖輯話' 에도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