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중기의 문신. 1124년(인종 2) 과거에 급제를 하여 원흥진판관(元興鎭判官)을 초임으로 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정사에 유능하다는 평을 들었고, 임기가 다 되자 개경에 돌아와 지조를 지켜 세속부침(世俗浮沈)에 관계하지 않았다. 따라서, 10년 동안 임관받지 못하여 성동작동(城東鵲洞)에 살면서 몸소 농사를 지어 처자를 부양하였다. 그러나 많은 선비들이 그를 스승으로 존경하였다. 그때 그가 합격한 과거의 지공거 였던 김부식(金富軾)이 그의 지절(志節)을 칭양하여 김부식에게 추천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는 탁라도구당사(○羅島勾當使)에 임명되었고, 그뒤 진(鎭)의 판관을 역임하던 중 병을 얻어 개경에 돌아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