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의 문신. 호는 송은(松隱). 판도판서(版圖判書) 영균(永均)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능주구씨(綾州具氏)로 좌정승(左政丞) 위(褘)의 딸이다. 고려 왕조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郞), 중서령(中書令), 세자이사(世子貳師) 등의 벼슬을 지내고, 여러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여 전공을 세웠다. 조선이 개국되자 두문동(杜門洞)의 귀은제(歸隱第)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1395년(태조 4) 공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고, 이듬해에 다시 좌의정에 임명되었지만 부임하지 않았다. 집 뒤의 산을 송악(松岳), 마을을 송계(松溪), 호를 송은, 집을 송암(松庵)이라 한 것은 모두 송경(松京)의 송(松)자의 뜻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죽은 뒤에 좌의정에 추증되고 충숙(忠肅)이라는 시호가 내렸으며, 밀양의 덕남서원(德南書院)과 신계서원(新溪書院), 용강사(龍岡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송은집'이 있다. 초명은 천익(天翊), 자는 태시(太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