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춘부(李春富)
  • 양성이씨(陽城李氏),  출생~사망 : ? ~ 1371
고려 말의 문신. 양성군 연의 손자이며, 첨의평리(僉議評理)를 지낸 나해(那海)의 아들이다. 삼사좌윤, 밀직, 대언을 거쳐 공민왕 때 판추밀원사에 올랐다. 1359년(공민왕 8)홍건적이 쳐들어와 개경이 함락되자 전라도도순문사 겸병마사가 되어 이를 물리친 공으로 충근절의동덕찬화공신(忠勤節義同德贊化功臣)의 호를 받고 도첨의평리(都僉議評理)에 임명되었으며 난이 평정된 뒤에는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뒤 파면되었다가 신돈(辛旽)에게 아부하여 찬성사가 되었고, 왕의 환심을 사 시중까지 지냈다. 밀직 김란(金蘭)과 더불어 매일 아침 신돈의 집을 다녀와서야 등청을 할만큼 심복이었으며, 1371년 신돈이 수원에 귀양가게 되자 사헌부의 탄핵으로 사형에 처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