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의 문신. 정당문학 조년(兆年)의 현손이며, 낭장 사용(伺容)의 아들이다. 부인은 종부령(宗簿令) 윤보(尹輔)의 딸이고, 재취는 좌시중 이성림(李成林)의 딸이다. 그의 일문은 종조부 이인임(李仁任)이 우왕 대의 집정권신으로 당대의 권문세가를 이루어 현달하였다. 우왕 초기에 지신사(知申事)에 중용되어 왕의 양자 반복해(潘福海)와 더불어 장난이 심하였으나, 동료인 예문응교 윤소종(尹紹宗)의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을 보고 왕에게 간청하여 쌀 10석을 하사하도록 도와주었으며, 서경부윤에 보임되어서는 수령 중 치적이 제일이어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1382년(우왕 8)에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한양에 천도할 때 수종총신(隨從寵臣)의 대열에 오르기도 하였다. 같은해 응양군상호군을 역임하고, 이듬해 정방제조(政房提調)가 되어 인사권을 장악한 바 있으며, 다시 삼사우사(三司右使)에 올랐으나 1388년 최영(崔瑩)과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권신 이인임과 임견미(林堅味), 도길부(都吉敷) 등이 제거될 때 족당이라 하여 장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