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의 문신. 본래의 성은 순씨(筍氏)였으나 현종의 이름과 같아서 그것을 피해 5대조 응(凝) 때 손씨로 고쳤다. 충선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충숙, 충혜 양조에 벼슬하고 1348년(충목왕 4) 첨의평리(僉議評理)로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1349년(충정왕 1) 추성수의동덕찬화공신(推誠守義同德贊化功臣)에 봉해지고,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를 거쳐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었다. 이듬해 복천부원군(福川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351년 치사(致仕)하였다.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의 난으로 왕이 복주(福州: 지금의 安東)로 피난할 때 중도에서 평복으로 왕을 맞아 치하를 받았으며, 1364년 난의 평정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서 왕으로부터 궤장(○杖)과 자신의 초상화를 받았다. 고향으로 돌아올 때 이제현(李齊賢), 이색(李穡) 등 학자들이 시를 지어 전송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정평(靖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