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의 문관. 이부상서 원지(元之)의 아들이다. 1359년(공민왕 8)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호부상서로서 세포(細布)와 주육(酒肉)을 가지고 적진에 들어가 적의 정세를 염탐하고, 이듬해 적서(賊書)를 가지고 돌아오는 등 공을 세웠다. 이해에 홍건적을 평정한 것을 고하기 위하여 이공수(李公遂) 등과 함께 원나라로 떠났으나 길이 막혀 되돌아왔다가, 이듬해 다시 사신으로 원나라에 가서 도로의 개통을 축하하였다. 1363년 밀직부사로서 덕흥군(德興君) 혜와 내응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사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