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초명은 한생(漢生: 일명 匡自). 호는 이헌(怡軒). 창녕 성씨의 시조인 인보(仁輔)의 현손, 전객서부령 공필(公弼)의 손자이고, 판도총랑(版圖摠郞) 군미(君美)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삼사좌윤 오천(吳○)의 딸이다. 1336년(충숙왕 복위 5)에 문과에 급제하여 첨서밀직(簽書密直), 정당문학을 역임하였다. 1371년(공민왕 20) 민부상서로 있을 때 신돈(辛旽)이 처형당하자 그 당류로 지목되어 장류(杖流)당하였다가 1378년(우왕 4) 정당문학상의(政堂文學商議)에 다시 발탁되었다. 1389년(공양왕 즉위년)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정변에 아들 석린(石璘)이 참여, 9공신이 되었으나 1392년에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李成桂)가 등극하자 벼슬을 버리고 포천 계류촌(溪流村)에 은거하였다. 태조가 고려 구신(舊臣)의 회유책으로 검교문하시중, 창녕부원군에 봉하였으나 고사하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