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찬성사 신호(臣扈)의 손자이다. 1382년(우왕 8) 생원시에 장원급제하고 곧 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관계에 진출하였다. 문하부기거주(門下府起居注), 장령 등의 관직을 거쳐 1409년(태종 9)에 집의로 있으면서 표면에 드러나기는 간통사건이나 실제는 재산분쟁인 최수미(崔須彌)의 사건을 올바르게 처리하지 못한 것으로 우사간대부 유겸(柳謙)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그뒤 다시 서용되어 1425년(세종 7)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렀다. 문장이 뛰어나 세상에 이름이 있었다.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