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자는 원명(元明). 호는 일계(逸溪). 밀직제학(密直提學) 도(濤)의 아들이다.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1404년(태종 4) 집의가 되고, 1408년 형조참의가 되었다. 그뒤 1418년 호조참판, 이듬해에 형조참판이 되고, 다시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헌, 원주목사가 되고, 1423년(세종 5)에는 평안도관찰사, 1428년에는 형조판서가 되었다. 이때 마침 동지총제(同知摠制) 성개(成○)의 노비에 대한 오결사건(誤決事件)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형조의 기구확대를 둘러싸고 논란이 거듭되는 가운데 파직당하였다. 만년에는 개성부유후(開城府留後)가 되었다가 1434년 68세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학문이 뛰어나 음양(陰陽), 복서(卜筮), 천문, 지리, 의약, 음률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였다. 배불론자(排佛論者)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상(喪)을 '주자가례'에서 따르도록 여러 아들에게 유언할 정도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