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최칠석(崔七夕)
  • 전주최씨(全州崔氏),  출생~사망 : ? ~ 1394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 희평(希平)의 증손으로, 문숙공(文肅公) 유의 손자이며, 상산부원군(尙山府院君) 선능(善能)의 아들이다. 1380년(우왕 6) 비장(裨將)으로 나세(羅世), 심덕부(沈德符), 최무성(崔茂星) 등과 더불어 신주(信州), 안악(安岳), 봉주(鳳州)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시키고, 이듬해 해도만호(海道萬戶)가 되었다. 그러나 사사로이 군사 30명을 놓아주고 그 식량을 자기 집에 운반하였다가 발각되어 하옥되기도 하였다. 1388년 왜구가 삼도에 침입하여 민가를 불사르고 약탈을 자행하자 밀직부사로서 자혜부사(慈惠府使) 조언(曺彦)과 함께 이를 격퇴시켰으며, 다음해 경상도 원수(元帥) 박위(朴○)가 대마도를 정벌할 때 그를 뒤따라가 대마도 인 300여명을 잡아가지고 돌아왔다. 뒤에 대마도를 정벌한 공으로 왕으로부터 칠석(七夕)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1390년(공양왕 2) 윤이(尹○), 이초(李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한때 유배되었다. 고려가 망하자 종손인 만륙(○六)과 함께 상향(桑鄕)에 은거하였다가 태조의 부름을 받아 1394년(태조 3) 경기도도수군절제사(京畿道都水軍節制使)에 보임되었으나 곧이어 병으로 죽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남달리 키가 컸으며, 임금의 명을 받아 기선(騎船)을 만들었고, 특히 왜구를 방어하는 데 공이 많았다. 시호는 위정(威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