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오몽을(吳蒙乙)
  • 보성오씨(寶城吳氏),  출생~사망 : ? ~ 1398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시조 현필(賢弼)의 11대손으로 소부감령(少府監令) 예(豫)의 아들이며 병마사 신을(信乙)의 형이다. 1380년(우왕 6)에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 말에 관직이 대장군에 이르렀다. 1392년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는 데 공을 세워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어 150결의 공신전을 받았다. 1394년(태조 3) 고려의 왕씨(王氏)일족을 제거하기 위하여 왕씨들을 강화도, 거제도 등 해도에 유배했는데, 그는 강화에 유배하는 책임을 맡았다. 1396년 연산부(延山府)의 수령을 겸임하고, 이듬해는 강원도도관찰출척사에 임명되었으며, 1398년 보성군(寶城君)에 봉하여졌다. 같은해 이른바 제1차 왕자의 난에 연루되어 순군(巡軍)에 투옥되었다가 곧 이산진(伊山鎭)으로 유배되었으며, 사첩(謝帖)이 몰수되고 토지와 노비가 국가에 환수되었으며, 10월에 복주(伏誅)되었다. 죄명은 정도전(鄭道傳), 남은(南誾) 등과 함께 불궤(不軌)를 꾀하여 서얼왕자인 방석(芳碩)을 왕세자로 세우고 종친을 해치려 하였다는 것이다. 1409년(태종 9)에 녹권(祿券)이 추탈되고, 토전(土田)과 노비가 몰수되었으나, 1422년(세종 4) 공신영자(功臣影子)를 자손에게 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