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순흥안씨의 시조인 보승별장 자미(子美)의 5세손이며, 할아버지는 대제학 문개(文凱)이고, 아버지는 순흥군(順興君) 천선(天善)이다. 세종 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외조부가 된다. 소헌왕후는 어려서부터 외가인 그의 집에서 자라 왕비가 되었다. 그는 1362년(공민왕 11)에 별장에 이어 전객부령(典客副令), 군기윤(軍器尹), 판사복시사, 의덕부좌사윤(懿德府左司尹), 판종부사(判宗簿事)를 역임하였다. 그뒤 공부전서에 올랐으나 곧 벼슬을 면직당하고 가야금과 책을 벗삼아 16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였다. 1408년(태종 8) 검교한성윤에 등용되었다. 1409년 검교참찬(檢校參贊)이 되고 곧이어 검교찬성(檢校贊成)에 올랐다. 세종이 즉위하자 좌의정이 되어 치사하고, 뒤에 영돈령부사가 되었다. 그는 마음이 충직하였으며 의친(懿親: 소헌왕후의 외조부)이 되어서는 더욱 행실을 삼가고 신중히 하여 교만함이 없었다 한다. 세종이 예관(禮官)을 보내 제문과 제전 20결을 하사하였다. 시호는 소의(昭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