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배정지(裵廷芝)
  • 대구배씨(大丘裵氏),  출생~사망 : 1259 ~ 1322
고려의 무신. 호는 금헌(琴軒). 민부전서(民部典書)를 지낸 영(瑩)의 아들이다. 10세에 금위(禁衛)에 들어가 도지(都知)가 되었다. 1270년(원종 11)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때 나이 11세로 말고삐를 걸머지고 왕을 호종하여, 그 공으로 대정(隊正)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 별장(別將)으로 만호(萬戶) 인후(印侯)를 따라 합단적(哈丹賊)을 연기에서 크게 무찔렀다. 이때 유시(流矢)가 턱뼈를 관통하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분전하여 전과를 거둠으로써 중낭장(中郞將)에 특진하였다. 그뒤 인후를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원제로부터 용사라는 칭찬을 받고 백금을 하사받았다. 뒤에 충청, 전라 양도 찰방이 되어 지방의 관기를 바로잡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였다. 충선왕 때 호군(護軍)이 되었으며, 사농시(司農寺)와 유비창(有備倉)의 일을 관장하였다. 1318년(충숙왕 5) 대호군으로서 탐라존무사(耽羅存撫使)가 되어 성주와 왕자를 추방하고 반란을 일으킨 제주민(濟州民) 사용(使用), 김성(金成), 엄복(嚴卜) 등을 토벌하였으며, 돌아와 밀직부사가 되었다. 1321년 옥사가 일어나 귀양갔다가 풀려나온 뒤에는 거문고와 바둑으로 여생을 보냈다. 체구가 크고 무략(武略)에 뛰어났다. 나주의 초동사(草洞祠)에 제향되었다. 초명은 공윤(公允), 자는 서한(瑞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