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무신. 최우(崔瑀)의 문객으로 대장군 인 송(松)의 아들이다. 아우 습과 함께 김준(金俊)의 심복이 되어 행수지유(行首指諭)가 되고 뒤이어 장군이 되어 원종의 총애를 받았다. 임연(林衍)이 김준을 제거한 뒤 임연에게 포섭되어 대장군, 직문하(直門下)가 되었다가 뒤이어 상장군이 되었다. 1274년(충렬왕 즉위년) 추밀원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지주사(知奏事)가 되었다. 그해 왕을 수행하여 서북면에 나가 원나라에서 오는 공주를 맞았다. 1276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었으며, 이듬해 세자의 조호(調護)가 되었다. 1277년 위득유(韋得儒)와 노진의(盧進義) 등이 김방경(金方慶)을 무고하여 원나라 장수 흔도(○都)와 홍다구(洪茶丘)의 국문을 받게 되자, 흔도와 홍다구에게 붙어서 김방경을 모함하였다. 이듬해 김방경의 무죄가 드러나자 백령도로 유배되어 바다에 던져져 죽었고, 가산은 몰수를 당하였다.